뉴린의 블루버드 모텔 - 11월 24일. 월 6:30am

그 버스는 그레이 린, 포인트 체발리에, 아본데일, 뉴린을 거쳐 핸더슨 깊숙히까지 들어가는 163번 버스였다. 예전에 뉴질랜드에 지낼 때, 아본데일에 살았던 성빈은 오히려 자신이 잘 아는 지역으로 가니 마음이 좀 놓였다. 그는 당황한 것인지 뛰어서 숨이 차는 것인지 확인 안 되는 혜원을 안정시켰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모바일을 꺼내 잠시 노려보다 전원을 끄고 배터리를 본체에서 분리시켰다. 그들은 뉴린을 지나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다. 거기에는 예전부터 수도 없이 지나쳐온 블루버드 모텔이 있었다. 그들은 마지막 남은 방을 하나 간신히 잡고, 맥주를 몇병 마셨다. 맥주로 배가 부르자, 성빈은 위스키를, 혜원은 초코렛 맛 베일리를 마셨다. 술이 들어가자 모든게 좀 안정적으로 보였다. 둘은 누가 뭐랄 것도 없이 함께 샤워를 했다. 그리고 함께 침대속으로 다이빙을 해 지난 6개월간의 그리움을 채웠다.

약간의 숙취를 느끼며 일어난 성빈이 시계를 보자 6시 30분이었다. 이른 시각이었지만, 날은 벌써 환했다. 커피를 타 온 성빈은 발코니에 나가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입에 물고는 생각에 빠졌다. 시작은 태국의 핫야이를 막 지나 말레이시아의 입국사무소에서였다. 거기서 처음으로 그 빌어먹을 알마니 검은 정장 놈을 처음봤다. (성빈은 이제 이 표현이 너무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너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 때 그 놈은 분명히 나에게 적대적이지 않았다. 뭐라 말을 한건 아니지만, 내가 여권에 도장을 다시 받아야 한다고 말했을 때, 순순히 나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 때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그 놈이 먼저 사무실을 떠났고, 그 다음에 쿠알라 룸푸르에서 봤을 때는 나의 팔을 꺾고는 화장실로 질질 끌고갔다. 분명 화장실에 가서 나에게 포르노 DVD나 팔려는 건 아니다. 이미 그 때는 적대적이었다. 왜 그럴까? 입국사무소와 쿠알라 룸푸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입국사무소의 사무실에서 도장을 고쳐 받을 때, 그는 웃옷을 벗어서 의자에 걸쳤다. 그리고 모바일을 꺼내 책상에 올려놨다. 나와 같은 모바일. 같은 모바일. 똑같이 생긴 모바일. “그거다” 성빈은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혜원이 부시시 일어나 가운을 걸치고 성빈에게 온다. 성빈은 커피를 한잔 따라주며 설명을 한다.

그 빌어먹을 알마니 검은 정장 놈하고 말레이시아 입국 사무소에서 모바일이 바뀌었다. 그 놈은 입국사무소를 떠나 버스에 오른 뒤에야 모바일이 바뀐 것을 확인했겠지. 버스는 달랐지만 거의 같은 시각에 입국사무소를 통과했으니 거의 같은 시각에 쿠알라 룸푸르의 푸두라야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을 것이다. 성빈은 아침으로 사 먹은 Lasi Lemak이 떠 올랐다. 그걸 먹고 있다가 그 놈에게 발각되고, 그 놈은 나를 끌고 화장실로 가려고 했다. 아마 가서 모바일을 내 놓을라고 하려고 했겠지만 몇십센트에 목숨을 건 용감한 화장실 수금 아저씨 덕분에 빠져나왔다. 그 후 놈을 본건, 오클랜드 공항. 기다리던 일행이 있던 걸로 봐서는 그 놈의 목적지가 뉴질랜드였다고 볼 수 있다. 아마 공항 밖에 세워놓은 3대의 테리토리도 그 일행이 가져온 것이겠지.


우리가 공항을 빠져나와 미션베이에서 햄버거를 먹고,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는 동안에는 그들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비아덕트에서는 알고 있다는 듯이 수색을 했다. 그 몇시간 동안에 우리 위치를 추척했다. 어떻게? 뭔가 미흡하다. 뭔가 아귀가 안 맞는다. 그 놈이 나에 대해 알고 있는건 내가 그 놈의 모바일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렇다. 성빈은 혜원이 비아덕트에서 친구와 통화 중일 때, 자신이 모바일의 전원을 켰다는 것을 기억했다. 모바일이다. 모바일의 GPS로 찾은 것이다. 도대체 이 모바일을 왜 그리 찾는걸까?

그 놈의 비싼 알마니 정장과 일행들을 보건데, 정부 혹은 정부기관에 필적하는 대형집단의 놈들이다. 지금 켜 놓으면 전화가 올까? 전화만 온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돌려주고 싶다고 말하고 싶은데, 과연 그들이 순순히 그렇게 할까? 쿠알라 룸푸르에서도 물어봤다면 바로 돌려줬을텐데, 왜 그리 과격한 방법을 썼을까? 쿠알라 룸푸르에서 이미 폭력을 행사하고, 오클랜드 한 복판에서 몇 명의 똘마니를 데리고 죽기살기로 따라온 놈들이 그냥 돌려준다고 하면 “아~ 네. 감사합니다” 하며 물러날까? 성빈과 혜원은 마주보고 고개를 저었다. 그럼 그냥 부숴버릴까? 그럼 끝나는 것 아닌가. 그럴 것 같진 않다.

정부기관 혹은 정부기관에 필적하는 능력을 가진 놈들이라면 어제 입국자만 조사하면 나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할 수 있을 것이다. 난 내년부터 대학원을 다녀야 하는데, 사랑하는 연인도 여기 있는데, 요 좁은 오클랜드에서 언제까지나 도망만 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

성빈이 고민에 빠져 있는 동안 혜원은 샤워를 마치고, 가방에서 디지털 카메라를 꺼냈다. “오빠, 우리 사진 찍어요~ 이제 메모리 카드에 용량이 얼마 없어서 몇 장 찍으면 꽉 찰거 같아” 이거다! 즉시 성빈은 모바일을 꺼내 옆 면을 확인한다. 있다. SD 메모리 칩이 하나 꽂혀있다. 급히 꺼내 자신의 모바일에 삽입하고는 똘망똘망한 눈빛의 혜원과 함께 자료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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