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랜드 – 11월 23일. 일 7:48 pm
자신이 머물고 있는 SkyCity 호텔로 돌아온 Justin은 금요일 밤 MI6 사무실에서 Kate에게 요청해 놓은 Peter와 Alex의 지난 일주일 행적을 정리한 자료를 보며, Kate에게 전화를 하고 있었다. “어제 요청했던 뉴질랜드의 이혜원이란 여자 기억하지? 응. 그래. 내가 조회한 차량의 소유주. 응. 그 여자가 태어난 날부터 오늘까지의 모든 과거를 다 추적해. 아냐아냐, 개인 신상 명세를 달라는 말이 아냐. 백그라운드, 누구와 어디 살았고, 누굴 만나고, 잠버릇은 물론, 첫사랑부터 지금 애인까지 다 조사해. 응. PBI(Person Background Investigation) Level 3 Protocol에 따라 깊게 조사해. 특히 업무에 대해서도 깊게 조사해봐. 은행에 근무하니깐, 업무까지 조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Justin은 약간 흥분한 상태였다.
Kate에게 소리를 지르는 것은 아니지만, 필요 이상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이미 Kate와는 4년이 넘게 함께 일을 해서 그녀도 다 알아서 할 수 있는데. “그리고, 오늘 오클랜드 공항에 입국한 모든 승객의 리스트를 확보하고 PBI Level 2 Protocol에 의해 조사해서 바로 나한테 보내. 응. 오전 11시 이후에 입국한 사람은 필요없어. 새벽부터 11시까지 도착한 항공기들만 조사하면 돼. 업데이트 되면 전송하고, 바로 전화해줘. 아, 그리고 Kate 미안해. 일요일인데 쉬지도 못하게 해서.”
Justin은 전화를 끊고 다시 밖을 바라본다. 자신은 Project Kairos와 Peter 그리고 Alex를 따라 8시간 전에 뉴질랜드에 도착했다. 그런데 도착 하자마자 공항에서 이 커플이 도망치는 것을 목격했고, 지금은 거의 죽기 직전에 구해줬다. 그리고 그 사내. 피 냄새를 진하게 풍기는 그 사내. 그는 분명 전문가였다. 일반인이라면 나의 의도를 그렇게 알아채지도 못했을 것이다. 나를 보는 순간 양복 안 쪽으로 손을 찔러 넣었다. 총집을 차고 있었다는 의미인데… 그는 누굴까? 분명 MI 라인은 아니다. 그럼 CIA나 NSA? 밀리터리 작전 위주로 움직이는 CIA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역시 NSA? NSA에서 Project Kairos에 대한 보고서를 내게 보냈고, 난 뉴질랜드에 와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전문가와 마주친다. NSA 일 확률이 높다. 이스라엘의 모사드나 KGB일리도 없다.
잠깐, 그 놈은 아침에 입국했다. 그 사이에 총을 구했다? 총집까지? 마피아나 테러집단이 해외 현지 조달책을 통해 총을 입수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총집까지? 세상에 어떤 마피아가 총집까지 구해 찬단 말인가. 지금이 서부개척시대도 아니고. 그럼 역시 정부기관쪽이다. NSA의 뒷치닥거리를 하는 놈이거나… 아! Justin은 순간 손벽을 쳤다. 왜 그 생각을 못했지? NZSIS가 있지 않은가? 조용하고 세상과 멀리 떨어져 있고, 별 큰일 없는 나라기는 하지만, 어쨌든 여기에도 뉴질랜드 보안정보부가 있지 않은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검은 정장의 사내들과 합류하고, 총을 구하고, 몇 시간만에 그 동양 커플의 위치를 잡아내서 추적하고… 역시 NZSIS라는 추론이 가장 설득력있다. 가만 Alex가 집권 여당인 Works 당의 차기 대표라고 했지. Alex 정도라면 NZSIS쪽에 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Peter, Alex, NZSIS, 쫓기는 동양 커플. 연결 고리는 찾은거 같다. Justin은 다시 전화를 했다. “Kate. 하나만 더. 그 이혜원이란 여자의 모바일을 실시간 감청하고 GPS가 잡히는대로 나한테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해줘. 고마워”
Vincent는 추격팀의 임시 본부인 힐튼 호텔의 방으로 들어오면서 문 옆에 있던 쓰레기통을 발로 걷어쳤다. 쓰레기통은 거실을 가로질러 벽에 큰 소리를 내며 부딫쳤고, 모두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 이럴때 말을 꺼내는건 자살행위였다. Vincent는 물을 마시기 위해 주방으로 가다가 믹서기를 보았다. 여긴 스위트룸이고 과일이라도 갈아 먹으라는, VIP들의 건강을 세심하게 배려한 호텔 측의 의도와는 달리 Vincent는 그 동양놈을 저 믹서기에 넣고 갈아버리고 싶었다. 믹서기가 작아 한번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부위 별로 토막이라도 내서 갈아버리고 싶었다.
길바닥의 개미를 밟듯이 죽여버릴 수 있는 이 애.송.이. 놈이 너무 저주스러웠다. 태국에서는 내 모바일을 집어가고, KL에서는 나를 공격하고 빠져나갔으며, 나와 비슷한 시각에 오클랜드 공항에 있었고, 방금 전 내 눈 앞에서 유유히 빠져나갔다. 성빈과 혜원이 탄 버스를 봤지만, 이 나라 버스의 절반은 옆면과 뒷면에 버스 번호가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Justin은 그 버스도 저주스러웠다. 도대체 그 동양 기집애는 또 누구지? 아니, 그 보다 중요한 것은, 도.대.체. 나를 가로막은 그 남자는 누구란 말인가.
살인 교육을 받은 Vincent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왕복 6차선을 넘어서 마주하고 있었지만, 그에게서는 분명 전문가 냄새가 났다. 자신만큼 살인 교육 위주로 받은 것인지, 정보기관 소속인지, 프랑스의 용병 부대 출신인지 모르겠으나, 분명 전문가였다. 총을 뽑아 들었다면 둘 다 무사하지는 못했을 것이었다. 오클랜드의 제일 복잡한 거리에서 자신이 총에 맞아 병원에라도 실려간다면 자신의 정체가 노출될지도 몰랐다. NZSIS가 오클랜드 한 복판에서 총을 들고 외국인을 추적했다라는 것이 밝혀지면, 그렇지 않아도 뉴스거리도 없는 이 나라의 언론은 월드컵 때 영국을 뒤짚어 엎는 스킨헤드만큼이나 뒤집어 질 것이다.
뉴질랜드 헤럴드는 ‘정보기관이 도로 한 복판에서 민간인 살해 위협, 낭비되는 혈세’라는 제목으로 한달 간 춤을 출 것이고, 방송국은 그 거리로 뛰쳐 나와 지나가는 개나 소나 붙잡고 증인이라며 인터뷰를 할 것이다. 북섬 북쪽 끝에 있는 뉴질랜드의 가장 작은 도시 Kerikeri부터 남섬 최남단에 있는 Dunedin까지 온 나라가 NZSIS에 대해 떠들것이다. 정치인들, 특히 People 당의 공세와 언론, 그리고 해외 언론까지 기사화 할 것이며, 해외 정보기관들도 NZSIS를 자신들 앞가림도 못하는 저능아처럼 여기게 될 것이다. 그렇게 계속 떠들다보면 자연스럽게 자신과 Tim, 그리고 Alex가 세상에 드러나게 될 수도 있었다. 아. 이건 재앙이었다. 그 순간 서로 총을 뽑지 않은 것은 그나마 신께서 내게 주신 작은 축복이었는지도 모르겠다라고 생각하자 조금 위안이 되었다.
잠깐, 서로 총을 뽑는다. 서로 총을 뽑는다. 총이 뒷 춤에 있는 그 보다는 양복 앞쪽 안에 있는 내가 훨씬 더 빨랐을 것이다. 그는 분명 나를 겨냥하기도 전에 내 총에 쓰러졌을 것이다. 6차선 정도라면 나는 한방에 머리통을 날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명히 그 자가 허리춤에 손을 넣는 것을 보고 나도 내 총을 잡았다. 그는 왜 허리 뒷춤에 총을 넣어놨을까? 보통 안 쪽에 총을 차고, 뒷춤의 총은 예비용으로 사용하는데. 양복 안쪽의 총을 잡지 않았다는 것은, 총집을 차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고.. 총집을 차고 있지 않다는 것은… 제길! 속았다. 그는 총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나를 속이기 위해 허리 뒷춤에 총을 꽂았다는 듯이 손을 허리 뒤로 밀어 넣었던 것이다. 총을 양복 안쪽에 찰 경우 전문가들은 그 부피감으로 총의 존재를 알 수 있다.
내가 무리를 해서라도 길을 건너려고 하자, 안전하게 그 동양놈을 빼돌리기 위해 쇼를 한 것이다. 자신에게는 총이 없지만 이대로 몇 초만 상대방을 속이면 된다고 판단하고, 말 한마디 하지 않고도 나에게 확실한 의도를 전달했으며, 뒷 춤으로 손을 찔러 넣은 상황 판단과 반사 신경. 이건 좋지 않다. 전문가다. 반드시 전문가여야만 했다. 전문 킬러와는 다르다. 전문 킬러라면 일단 총을 쏘고, 곧바로 퇴로를 확보했을 것이다. 역시 정보 기관 냄새가 난다. 그런데 어디서 나타난거지? 아니 왜 나타나서는 그 놈을 도주시킨거지?
Vincent는 옆에 숨을 죽이고 있는 정보수집팀에게 Sky Tower 앞에서 출발하는 모든 버스의 번호와 노선을 확인하라고 했다. 그리고 지난 일주일 동안 입국한 모든 사람들의 신원을 다 조사해서 자신을 가로막은 그 외국인을 찾으라고 했다. 그리고 오늘 오전에 말레이시아에서 오클랜드로 입국한 모든 승객 가운에 그 동양 남자를 찾아내라고 했다. 여긴 뉴질랜드고 내 홈그라운드다. 외국인이든, 동양놈이건 이 나라에 입국한 이상 찾아낼 수 있다. 반드시 찾아내리라. Vincent는 태국에서 모바일을 책상 위에 꺼내 놓은 자신 자신을 다시 한번 저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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