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정말 "보이지 않게" 되어 버리는 21세기.

이제는 수요와 공급을 넘어, 인간의 심리와 행동에 따라 경제학의 논리가 새롭게 세워지고 있다.

아래 책 소개 내용이 길지만, 중간 중간 중요한 개념을 표시해 놨으니,  한번쯤 읽어보시길......

Philosophiren 


경제를 움직이는 인간의 마음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
아담 스미스 이래의 고전경제학(주류경제학)이 전제하고 있는 인간상은 합리적으로 선택, 판단하고 효용의 극대화를 추구하며 의지마저 굳은 완벽한 경제적 인간이다. 그러나 우리는 터무니없는 값의 커피를 하루에도 몇 잔씩 마시며, 싼 게 비지떡이라 말하면서도 왕창세일에 넘어가고, 금연과 다이어트는 머리 속으로만 하는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이며 나약한 자연인이 아니던가. 이렇듯 주류경제학은 비현실적인 인간상을 경제주체로 가정하여 전개된 이론이므로 빛나는 이론적 정합성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실과 괴리를 보일 수밖에 없는 근본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러한 인간의 ‘비합리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단, 여기서 말하는 ‘비합리성’이란 제멋대로이고 정형화되지 않은 행동경향이 아니라 경제적 인간의 완전 합리성 수준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이다. 즉, 비합리적이기는 하나 일정한 경향을 갖고 있고, 따라서 예측가능한 것이다. 아러한 행동경향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그러므로, 다니엘 카너먼 교수가 노벨경제학상 수상 소감에서 ‘우리들(카너먼과 트버스키)이 한 일을 인간의 비합리성을 증명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겠다. 휴리스틱(heuristic)과 바이어스(bias, 편향)에 대한 연구는 합리성이라는 비현실적인 개념을 부정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경제학과 심리학의 만남, 행동경제학
심리학자 다니엘 카너먼(Danniel Kahneman) 교수는 경제주체의 의사 결정이 반드시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준합리적 경제이론’을 수립하여 주류경제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현실적인 경제학을 완성했다. 오랫동안 축적된 주류경제학의 이론에 심리학의 연구 성과와 다양한 실험방법을 접목한 그는 주류경제학의 기대효용이론을 뛰어넘는 ‘행동경제학’ 이론으로 경제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그 공로로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행동경제학’이란 인간이 실제로 어떻게 ‘선택’하고 행동하는지, 그 결과로 어떠한 사회현상이 발생하는가를 고찰하는 학문이다. 즉 인간행동의 실제와 그 원인, 그것이 경제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심층적으로 규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경제학이다. 오늘날의 경제학은 빈틈없이 완벽한 사람들의 합리적 손익계산보다는 감정의 비중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른바 ‘계산에서 감정으로’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어느 학자는 “인간의 행동이 ‘이성과 감정이라는 두 마리 말에 이끌리는 쌍두마차’라는 비유는 옳지만, 이성은 작은 조랑말일 뿐이고 감정은 커다란 코끼리만 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마음이 인간행동을 결정하고, 인간행동이 경제를 움직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경제는 마음(mind)으로 움직여진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선택은 합리적이지 않다 ― 프로스펙트 이론(Prospect Theory)
행동경제학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연구자로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과 다니엘 카너먼을 들 수 있다. 둘 다 경제학자가 아니면서 1978년과 2002년에 각각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는 점에서 경제학에 대한 그들의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사이먼은 인간의 선택에 대한 심리학 연구의 기본 관점을 제시하였다. 즉 경제학적 합리성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정보가 인간에게 주어지지도 않으며, 정보를 처리하는 데 있어서도 사람으로서의 한계를 지니고 있으므로 인간의 합리성은 ‘제한’되었다고 보는 것이다,(제한 합리성, bounded rationality)

카너먼과 지금은 고인이 된 그의 동료 연구자 트버스키는 이러한 기본 관점에 입각하여 실제 인간의 행동이 주류경제학의 ‘기대효용이론’이 예측하는 바와 다르게 나타남을 실험을 통하여 입증함으로써 인간의 선택을 실질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프로스펙트 이론(Prospect Theory)'을 제시하였다. 1979년에 발표된 기념비적인 이 이론은 주류 경제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고 행동경제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의 출발점이 되었다.

프로스펙트 이론이 기대효용이론과 어떻게 다른지를 보기 위해 다음 예를 살펴보자.
1. 10만원을 가지고 있고 다음의 두 선택대안 중 하나를 선택해야 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a. 0.5의 확률로 10만원을 더 받거나 0.5의 확률로 아무 것도 받지 못하는 것
b. 1의 확률로 5만원을 더 받을 수 있는 것

이 경우 사람들은 대개 b를 많이 선택한다. 자 그러면 아래의 상황에서는 어떠할까?
2. 20만원을 가지고 있고
a. 0.5의 확률로 10만원을 잃거나 0.5의 확률로 아무 것도 잃지 않는 것
b. 1의 확률로 5만원을 잃는 것

여기에서는 b보다는 a가 더 많이 선택된다. 기대효용이론에 근거하면 이는 모순된 선택행동이다. 왜냐하면 1과 2의 최종 자산 상태는 동일하므로 1에서 b를 선택했다면 2에서도 b를 선택해야 동일한 효용에 근거해 이루어진 일관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프로스펙트 이론으로는 위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보이는 선택행동을 설명할 수 있다. 프로스펙트 이론은 사람들이 최종 자산상태에 대한 효용의 비교로 선택을 하기보다는 상황을 이득 또는 손실로 먼저 파악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득으로 보게 되면 위험을 회피하는 태도를 갖게 되어 불확실한 결과보다는 확실한 결과를 보다 선호하게 된다. 그러나 상황을 손실로 보게 되면 위험을 추구하는 태도를 갖게 되어 확실한 손실보다는 불확실한, 그렇지만 더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는 대안을 더 선호하게 된다고 본다.

경제학의 새로운 패러다임, 프로스펙트 이론의 핵심 내용
‘사람은 변화에 반응한다’는 것이 카너먼과 트버스키가 창시한 프로스펙트 이론의 출발점이다. 프로스펙트 이론은 기대효용이론의 대체이론으로 고안된 것으로 주류경제학의 효용함수에 대응하는 ‘가치함수’ 및 확률의 중요성과 관계 있는 ‘확률가중함수’로 구성된다. 프로스펙트 이론에서 말하는 가치는 어떤 기준으로부터의 손익으로 측정됨에 유의해야 한다.

가치함수의 3가지 특징은 ‘준거점 의존성’, ‘민감도 체감성’, ‘손실회피성’이다.
준거점 의존성’이란 자산이 4,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줄어든 사람보다 1,000만원에서 1,100만원으로 늘어난 사람이 더 행복할지도 모르는 현실을 통해 절대적 효용보다 준거점을 기준으로 한 가치가 중요하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민감도 체감성’이란 이익이나 손실의 가치가 작을 때에는 변화에 민감하지만 가치가 커짐에 따라 민감도가 감소한다는 특성이다. 같은 3도 차이지만 기온이 1도에서 4도로 오를 경우가 21도에서 24도로 오를 경우보다 더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손실 회피성’이란, 손실은 같은 액수의 이익보다도 훨씬 더 크게 느껴지는 특성이다. 따라서 같은 액수의 손실로 인한 불만족은 이익이 주는 만족보다 더 크다는 의미가 된다. 카너먼과 트버스키의 실험에 따르면 1,000원의 손실이 주는 불만족은 1,000원의 이익이 주는 만족보다 2배에서 2.5배나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손실 회피성이 사람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으로 ‘보유효과’와 ‘현상유지 바이어스’를 들 수 있다. 보유효과’란 어떤 것을 실제로 소유하고 있을 때는 그것을 갖고 있지 않을 때보다 높게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1950년대에 1병에 5달러를 주고 산 와인이 현재는 100달러의 가치가 있음에도 팔 생각이 없고, 반면에 같은 와인을 지금 살 경우에는 35달러 이상은 주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 준다. 농지 소유자가 시장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해도 땅을 팔려고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이러한 보유효과에 따른 거래감소의 좋은 예이다.현상유지 바이어스’는 말 그대로 사람은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하트먼은 캘리포니아 주의 전력 서비스에 대한 신뢰도와 전력요금의 선호에 대해 실상을 파악해 보았는데, 신뢰도나 요금이 어떻든지 간에 소비자 그룹은 쓰던 것을 계속 쓰려고 하는 현상유지 경향을 58~60%정도나 보여 주었다. 이러한 ‘사회적 관성’은 같은 브랜드의 상품을 사고, 같은 직장에 머무는 사람들의 성향과도 결부되어 있다.

카너먼, 크네시, 세일러는 소비자나 노동자가 상품의 가격․임금․이윤 등의 결정에서 무엇을 공정(fair)하다고 생각하는지 연구한 결과 이 같은 손실회피나 보유효과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밝혀냈다. 커피숍에서 시간 당 9달러를 받던 종업원이 있다. 근처 공장이 문을 닫아 실업자가 증가하고 다른 커피숍에서 종업원들에게 시간 당 7달러를 준다고 해서 주인이 시급을 7달러로 내렸다면? 그것은 불공정하다는 답이 83%였다. 그런데 모든 상황은 동일하고 커피숍 종업원이 그만두었기 때문에 주인은 시급 7달러로 신규채용을 했다면? 이번에는 수용할 수 있다가 73%였다. 시급을 깎는 것은 종업원의 손실로 간주하고 불공정하다고 판단하였므로 일종의 보유효과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신규채용에 대해서는 보유효과가 작용하지 않으니 임금을 깎는 경영자의 행동을 불공정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인기 차종에 대해 가격표보다 200달러 높은 가격으로 파는 것은 불공정하게 여기지만, 동일 차종에 대해 이전까지는 200달러 싸게 팔다가 인기가 오르자 가격표에 적힌 그대로 판다면 수용할 수 있다는 편이 훨씬 많아지는 것도 공정성에 대한 보유효과가 작용한 것이다.
카너먼과 버레이는 이러한 경향을 기초로 분배와 재분배의 공정성에 대해서도 의미 있는 실험 결과를 얻어내고 공공정책에 있어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 주었다.

가치함수와 더불어 프로스펙트 이론의 또 하나의 축인 확률가중함수에 따르면 어떤 확률이 작을 때는 과대평가되고 확률이 중간 이상으로 커지면 과소평가된다. 실제 통계에 따른 연간 사망 발생 건수와 주관적 예상치를 비교해 보면, 사람들은 대개 천연두나 회오리, 수해와 같이 확률이 낮은 것은 실제보다 높게 예상을 하고, 암, 뇌졸중, 당뇨병 등 확률이 높은 것은 실제보다 낮게 예상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낮은 확률에 대한 과대평가로 인해 확률이 낮을 때는 이익에 대한 리스크를 추구하는 대신 손실에 있어서는 리스크 회피적으로 나타난다. 이 패턴에 따른다면 당첨 확률이 매우 낮음에도 불구하고 복권을 경쟁적으로 구입하는 일이나 감염될 확률이 매우 낮음에도 불구하고 광우병에 걸릴까봐 쇠고기를 기피하는 행동도 충분히 설명이 된다.

인간의 판단도 합리적이지 않다 ― ‘휴리스틱(heuristic)과 편향(bias)에 관한 연구’
흔히 사람의 판단이 흐려지는 것은 감정에 치우쳐서 나타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이성적으로 사고를 하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카너먼과 트버스키의 판단에 대한 연구는 인간의 사고 자체가 주먹구구식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그로 인해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순전히 우리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으로 인해 잘못된 판단, 즉 편향이 나타난다는 것이고 이는 많은 실험과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다.

이처럼 인간의 정보 처리는 현실적 제약으로 인하여 완벽성과 정확성을 지킬 수가 없고, 따라서 완벽한 최적의 결정이 아니라, 결국 차선의 판단과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 즉, 인간은 주어진 상황의 제한성과 자신의 인지 능력의 제한성 하에서 자신에게 어느 정도 만족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형태의 결정을 해야 한다. 또 빠르고 효율적인 처리를 위하여 이따금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도 허용해야 한다. 이러한 처리는 완벽한 논리적(앨고리즘적) 처리라기보다는 편법적(휴리스틱스) 처리에 해당한다

예를 들면, 확률이론에서는 p(A), p(B)가 p(A∩B)보다 당연히 크다. 그런데 사건 A, B에 구체적인 내용이 담기고 사람들에게 직관적으로 판단을 하게 하면, p(A∩B)가 p(A), p(B)보다 크다고 판단한다. 이는 사람들이 확률이론에 따라 논리적으로 판단을 하기보다는 간단한 주먹구구식 방법, 즉 휴리스틱(heuristic)한 방식으로 판단을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편향(bias)인 것이다.

인간의 선택과 판단에 대한 카너먼과 트버스키의 연구는 심리학과 경제학 이외의 분야에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 특히 휴리스틱의 사용으로 나타나는 판단의 편향은 인간이 이성적이고 합리적 존재라는 철학적 전제와 전통적인 인간관에 새로운 화두를 던져 주었다.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행동경제학의 등장은 20세기 후반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학문적 사건이며 과학적 변혁이라 일컬어진다.

행동경제학의 핵심 개념 ‘휴리스틱(heuristic)바이어스(bias, 편향)
카너먼이 말한 ‘휴리스틱’[(교수법・교육이) 체험적인(스스로 발견하게 하는)]은 합리적이지 못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근거로 삼는 간편한 방법(쉽게 말해 주먹구구식 방법)이며, ‘바이어스’는 그에 따라 얻어지는 판단이나 결정의 편향을 가리킨다. 즉, 직감적 선택이나 결정으로 인한 착각, 오류를 살펴봄으로써 인간의 경제행동을 좀더 실제적으로 고찰하는 것이다.

‘휴리스틱’의 가장 큰 특징은 ‘이용가능성’이다. ‘이용가능성’이란 어떤 대상의 출현 빈도나 확률을 판단할 때 쉽게 알 수 있는 사례를 생각해 내고 그것을 기초로 판단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소설에서 7개의 문자로 된 단어 중 ing로 끝나는 단어와 6번째가 n인 단어의 수를 물어보면, 사람들은 전자가 훨씬 많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ing로 끝나는 단어는 당연히 6번째가 n일 수밖에 없고, 6번째가 n인 단어는 ing로 끝나는 단어 말고도 많이 있으니 후자가 더 많은 것이 분명하다. 또 미국인들에게 자살과 타살 중 어느 쪽이 많을 것 같은지 물으면 타살이 더 많다고 한다. 하지만 1983년 미국의 기록을 보면 자살은 연간 27,300건, 타살은 20,400건으로 자살이 더 많았다. n보다는 ing가 생각해내기 쉽고, 매스컴에서 자살보다는 타살을 더 많이 접하는 데 따른 ‘이용가능성 휴리스틱’인 것이다.

이러한 ‘이용가능성’을 발생시키는 요인 중 하나로 ‘이미지화 용이성(Ease of Imaginability)'을 들 수 있다. 여대생들에게 학교 내에 어떤 병이 만연한 조짐을 알리고 증상에 대해 적어 주며 자신이 이 병에 걸릴 가능성을 판단하게 했다. 그 결과 증상에 대해 확실한 이미지가 그려지도록 구체적으로 적은 쪽지를 받은 학생이 가장 걸리기 쉽다고 판단했다. 반면에 증상이 추상적으로 적힌 쪽지를 받은 학생은 가능성을 매우 낮게 판단했다. 따라서 금연 캠페인을 위해서는 흡연으로 비참해진 사례를 생생하게 보여 주고,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사고현장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매우 효과적이다.

‘휴리스틱’의 두 번째 특성으로 ‘대표성’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어떤 집합에 속하는 사상(事象, event)이 그 집합의 특성을 그대로 ‘대표한다’고 간주해 버리는 성격이다. 4면이 초록색, 2면이 빨간색인 주사위가 있다. 이 주사위를 던지면 ‘①빨초빨빨빨’과 ‘②초빨초빨빨빨’ 중 어느 것이 일어나기 쉬울까? 대다수가 ②를 선택했다. 주사위면의 출현 빈도가 주사위의 특성을 그대로 대표한다고 간주한 ‘휴리스틱’인 것이다. 하지만 ②는 ① 앞에 ‘초록색’만을 첨가한 것이기 때문에 ①이 ②보다 출현 빈도가 높다고 볼 수 있다.

카너먼과 트버스키가 세 번째 휴리스틱으로 제시한 것이 ‘기준점 효과와 조정’이다. 이것은 불확실한 사상(事象, event)에 대해 예측할 때 처음에 설정한 기준점에 휘말려 적절한 조정을 하지 못하여 바이어스가 생기는 경우이다. 카너먼과 트버스키는 실험자들에게 ‘8×7×6×5×4×3×2×1’이 얼마인지 즉시 답하게 했다. 답변 평균치는 2,250이었다. 또다른 실험참가자에게는 거꾸로 ‘1×2×3×4×5×6×7×8’을 물었다. 놀랍게도 이번에는 512가 답변 평균치였다.(정답은 양쪽 모두 40,320이다.) 이러한 기준점 효과는 판단이나 결정을 할 때 광범위하게 나타나며, 기준점의 영향이 강하기 때문에 그것을 제거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이러한 효과를 활용한 예로 상품 겉면에 ‘희망소매가격 2,500원, 판매가격 2,300원’과 같은 표시를 들 수 있다. 소비자는 상품의 가치를 기초로 한 적정 가격을 알 수 없지만, 기준점(희망소매가격)보다 낮은 판매가를 보고 싸게 느끼는 것이다.

사실 휴리스틱이 일으키는 바이어스에만 역점을 두면 휴리스틱의 유용성을 간과할 수도 있다. 기거렌저는 ‘재인(再認) 휴리스틱(들은 적이 있는 대상이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 판단하는 것)’ 등을 예로 들며 ‘신속․간결한 휴리스틱’이라는 명명 하에 휴리스틱의 장점을 설명하기도 했다. 또 카너먼과 프리데릭은 인간의 정보처리과정 속에서 대상이 되는 특성(목표 속성)을 곧바로 마음에 떠오른 다른 성질(휴리스틱 속성)로 바꾸어서 판단하는 ‘속성의 바꿔치기’도 보여주었다. 실험자에게 최근 1개월 간의 데이트 횟수를 질문한 다음 행복도를 판단하게 하면 행복(목표 속성)에 대한 평가를 데이트 횟수(휴리스틱 속성)로 바꾸어 판단하는 휴리스틱에 따르게 되는 것이 그 예이다.

경제학의 새로운 트렌드 ‘행동경제학’
2003년 6월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산하인 보스턴연방은행이 '인간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 경제학과 정책에 주는 시사점'을 주제로 연례 컨퍼런스를 가졌다. 그동안 주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큰 관심을 끌지 못했던 ‘행동경제학’이 FRB의 토론주제로 선정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이것은 행동경제학이 주류에 진입하기 시작했음을 보여 주는 확실한 사건이 되었다. 도널드 콘 FRB 이사는 ‘행동경제학이 정책집행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하버드를 비롯하여 MIT, 스탠퍼드, 예일, 프린스턴, 시카고, UC 버클리 등 미국의 명문 대학들은 행동경제학을 정규 과목으로 채택하였을 뿐 아니라 심지어 유능한 교수를 영입하기 위한 쟁탈전까지 벌였다. 젊고 창의적인 인재들이 행동경제학에 몰리며 행동경제학은 현재 경제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새로운 트렌드가 되었다.

■ 지은이 : 도모노 노리오
1954년 사이타마 현 출생. 현재 일본에서 손꼽히는 행동경제학의 권위자이다. 와세다 대학 상학부 졸업. 동대학원 경제학 연구과 박사 과정 수료. 메이지 대학 단기대학교수를 거쳐, 2004년부터 메이지 대학 정보 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 동대학원 글로벌 비즈니스 연구과 강사를 역임했다. 전공은 행동경제학, 미시경제학이다. 주요 저서로 《경제학의 제상》, 《경제학의 이론과 수리》, 《경제학의 세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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