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린의 블루버드 모텔  - 11월 24일. 월 9:10am


어차피 숫자 놀이는 혜원의 전문 분야가 아닌가. 성빈은 그것은 혜원에게 맡겨 놓고 다시 그 알마니 정장 남자를 생각했다. 쿠알라 룸푸르에서는 공격을 당했고, 어제 비아덕트에서는 소중한 연인과의 저녁 시간을 강탈당했다. 두 정당의 대표인 알렉스나 마크 셀린과는 무슨 관계란 말인가?  송금확인서에 있는 수천의 이름을 혜원을 통해 조사해 볼 순 있겠지만, 별 의미는 없어보인다.

엄청난 시간이 소요될 것이고, 이 정도의 규모라면 모두 정상적인 신분은 아니라고 보인다. 주식 매수/매도 계획서에도 여러 파이낸스 관련 회사들이 있지만 특별히 누굴 끄집어 내긴 어렵다.  특별한 누군가가 그 속에 묻혀 있을 수도 있지만, 찾아내기가 결코 쉽진 않을 것이다. 무엇인가? 분명 무엇인가 있다. 그러나 뭔지 전혀 모르겠다.

 

어쨌든 돌파구는 필요했다. 일단 그 징그러운 알마니 정장부터 시작하자. 그 남자와 함께 떠 오른 남자는 어제 처음 본 또 한명의 사내였다. 그와 알마니 정장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있었다. 그걸로 보아 알마니의 일행은 아닌듯 하다. 나의 적의 적이면 내게는 친구가 되나?

오히려 그는 횡단보도에서 적극적으로 날 도와준 것 같다. 알마니 정장은 양복 안쪽에 , 그 남자는 허리 뒷춤에 손을 찔러 넣고 있었다. 둘 다 총을 잡고 있었던걸까? 뉴질랜드에 2년을 있었지만, 총을 본 적은 한번도 없다. 여긴 미국이 아니다. 그렇지만 성빈은 알 수 있었다.


자신도 대한민국 기무사령부에서 2년 반을 근무하지 않았나. 지겹도록 사격 훈련을 받은 터였다. 양복 안쪽으로 손을 넣을때는 총집을 차고 있다는 것이었고, 허리 뒷춤에 손을 찔러 넣은 것은 총집 없이 총을 감추기 위해 허리 뒷춤에 넣었다는 것이다. 간간히 오클랜드 남쪽에서 마오리들이 총을 들고 강도짓을 하긴 하지만, 벌건 대낮에 오클랜드 한 복판에서 총을 꺼내들 인간은 없다.

경찰도 총을 지니지 않고 다니는 나라에서. 역시 최고급 용병이나 국제적으로 수배를 받고 있는 테러리스트, 혹은 어느 나라일지는 모르겠지만, 정보부쪽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가려내는 법이 있다. 찾을 수 있다. 날 쫓고 있는게 누군지 찾을 수 있다.

 

성빈은 모텔의 전화기를 이용해 한국의 국정원에 근무하는 최선배의 모바일로 전화를 했다. 뉴질랜드가 아침 9시니 한국은 새벽 5시일테지만, 기다릴 여유는 없었다. 최선배와는 성빈이 기무사에 있을 때, 보안 교육을 받을 때 만나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왔다. 8년이나 선배지만, 친구 같은 그였다. 그에게 부탁을 해 볼 생각이었다. 들어주지 않으면 떼라도 써야했다.

어제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한 비행기의 승객 리스트를 구해달라고 했다. 아무리 친한 너라도 이런건 어려운거 알잖아 라고 잠결에 말하고 있는 선배에게 국제적으로 수배중인 초특급 테러리스트, 혹은 가장 비싼 가격으로만 일을 하는 고급 용병, 혹은 어느 나라일지 모르는 정보부가 있는지만 확인해달라고 했다.


"형, 내가 지금 10년전에 내 돈 떼어먹은 사람 찾을려고 하는게 아니잖아. 형. 좀 도와줘." 라며 밀어 붙이자, 최선배는 알았다고 한다. 아마 졸립지 않았으면 끝가지 거부했을지도 모른다. 그 김에 송금확인 내역서에서 한국이름을 몇몇 뽑아서 이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뉴질랜드에 있던 때도 알아봐 달라고 했다.

선배가 잠결에 제대로 받아 적었는지 걱정됐지만, 국정원에 10년을 근무한 나름 베테랑이다. 믿어볼만 했다. 연락을 받을 수 없으니, 몇 시간 후에 다시 전화를 하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제 반격을 할 차례였다.

성빈은 노트북에 인터넷을 연결한 후, SD 메모리 안에 있던 자료를 압축해서 sungvin_specialcaseonly@gmail.com 으로 전송했다. 이제 그 Gmail은 자동으로 수신된 메일을 야후로, 야후 메일은 말레이시아의 JobsDB.com 메일로, 그런식으로 미국의 mail.com 과 live.com, 중국의 Xina.com, 다시 미국의 AOL 메일 계정을 거쳐 자신의 숨겨진 메일 계정인 Gmail 계정으로 다시 전송될 터였다. 

준비가 필요했다. 그리고 혜원의 도움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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