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ckland Viaduct – 11월 23일. 일 5:53 pm

성빈은 눈 앞에 보이는 장면을 믿을 수가 없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가장 멋진 지역. 왼쪽으로는 수 많은 요트가 자신들의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고, 한가로이 요트를 정비하는 멋진 키위들(뉴질랜드인), 연신 사진을 찍어대고 있는 여행객들, 걸어오면서 키스를 해대는 젊은 연인들 오클랜드의 명물이자 가장 고급스러운 카페와 Bar들이 즐비한 이 Viaduct의 입구 모퉁이에 있는 Degree Bar에 그 빌어먹을 알마니 검은 정장의 사내가 뒤에 검은 정장의 사내 3명을 대동하고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도대체 저 놈은 나랑 무슨 웬수가 졌다고 태국에서부터 나를 따라 다니며 숨도 못 쉬게 하는거야.

그가 모습을 보인 Degree Bar에서 성빈이 있는 Soul 까지는 100미터도 채 되지 않는다. 야외에 앉아 있는 성빈은 바로 발각될 터였다. 주변을 찬찬히 확인하며 걸어오는 알마니 검은 정장. 뒤에 있던 검은 정장들은 Bar 안으로 들어가거나 윗층을 확인하며 알마니 정장 몇 걸음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저건 수색이다! 성빈은 순간적으로 지겨웠던 군대에서의 훈련들이 떠올랐다. 기무사령부라는 군 정보부에 근무했던 탓에 일반 군인보다는 더 밀도 높은 훈련을 받은 자신이었다. 그렇기에 KL에서도 한 순간에 상대방을 제압하고 도망친 것 아닌가. 아무튼 지금 중요한건 저들이 수색을 하며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수색을 하며 다가오기에 거리상으로는 이제 60미터도 안 남았지만, 몇분은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들은 Viaduct가 시작하는 오른편에서 오고 있었다. 성빈이 무작정 왼쪽으로 도망친다면 그들 눈에 바로 띌 것이다.

성빈은 머리를 굴렸다. 이 Soul 왼쪽에는 Mecca가 있고 그 옆에는 Forte라는 이탈리아 식당이 있다. 그래! 그 식당에는 다운타운 쪽으로 나가는 샛길이 있다. 성빈은 살며시 혜원의 손을 잡고 일어나 20불짜리 지폐 하나를 카운터에 던지듯이 주고 옆 Mecca 로 이동을 했다. 노천 카페라 테이블 사이로 비집고 이동하면 큰 무리는 없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혜원의 귀에 성빈은 “그 빌어먹을 알마니 검은 정장이야”라고 속삭이고, 혜원의 손을 계속 잡아 끌었다. Mecca를 다 통과하자 Forte가 나왔고 역시 뒷길이 있었다. 샛길로 빠지며 뒤를 살짝 돌아보니 그들은 20미터 거리까지 다가와 있었다.  


팀장님.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전방 약 40m 거리입니다.” Vincent의 왼쪽 귀에 꽂힌 이어폰으로 힐튼 호텔의 임시 본부에서 급히 알려왔다.
수색을 멈추고 따라와. 타겟이 이동한다” Vincent는 소리치고 먼저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성빈은 샛길을 지나는 동안 이동 경로를 생각해 두었다. 샛길을 빠져 나오자 마자 왼쪽으로 꺾어 오클랜드 시내에서 가장 크고 복잡한 다운타운 사거리로 갈 것이다. 기차역, 수십개의 버스정류장, 창고형 할인매장 WareHouse, WestField 쇼핑몰, 면세점 등이 모여 있는 그 사거리에서 오클랜드의 메인 도로 Queen St. 을 따라 MidTown으로 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Queen St.과 Victoria St.이 만나는 두번째로 복잡한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꺾어 Sky Tower 방향으로 올라갈 예정이었다.

자신은 오클랜드에서 6년을 살아 시내의 모든 길, 건물들의 출입구, 골목까지도 다 알고 있었다. KL에서와 같이 뒷 머리채를 잡히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따돌리고 도망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벌써 다운타운의 큰 사거리가 보였다. 혜원의 손을 붙잡고 마구 뛰었다. 사실 왜 뛰어야 하는지 잘 이해는 안 됐지만, 그 빌어먹을 알마니 검은 정장 놈이 한 행동을 봤을 때 뛰는게 좋았다. 사거리에 도착하자마자 운 좋게도 신호등이 바꼈고, 길을 건너 혜원을 질질 끌다시피하며 Queen St. 을 따라 계속 뛰었다.

V
incent 옆에서 뛰고 있는 John의 손에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유명한 GPS Navigation 업체 NavMan의 최신형 S200이 들려 있었다. 힐튼 호텔의 정보수집팀이 Vincent의 모바일 위치를 GPS로 잡아 John이 들고 있는 S200 으로 전송해 주고 있는 것이다. 순간 Vincent는 여기가 방콕이나 홍콩이 아님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수 많은 골목과 건물 사이의 틈(정확하게 이것은 길이 아니지만, 사람들은 그리로 다닌다. 제길)으로 인해 GPS 추적이 거의 의미가 없는 그 도시가 아니라, 모든 길은 반듯반듯하고 건물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어 추적이 용의한 오클랜드인 것이다.

그러나 Forte 레스토랑의 샛길(정확하게는 뒷길로 난 작은 문이기에…)을 모르는 Vincent는 Viaduct의 거리를 돌아서 다운타운 사거리로 왔고, 덕분에 120미터 정도 거리가 벌어졌다. “더 빨리” Vincent와 3명의 남자는 사거리에 도착해 파란 신호 아래서 안정적으로 달리고 있는 차들 사이로 뛰어 들어 길을 건넜다. 몇몇 차는 급정거를 하고 창문 밖으로 욕지거리를 하고 있었다. 바쁘지만 않았어도 저 입에 한 대 갈겨주는건데. Vincent는 Queen St.을 죽어라 뛰며, Mid Town 사거리에서 Sky Tower 방향으로 우회전하는 성빈과 웬 동양 여자의 뒷모습을 확인했다. 



자켓을 걸쳐입고 호텔을 나와 Queen St. 방향으로 슬슬 걸어 내려오던 Justin은 Albert St.을 건너고는 Reverse Bunge 를 잠시 바라보았다. 신기했다. 보통 번지점프라고 하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인데, 이건 땅에 있는 3개의 의자가 붙어 있는 공을 하늘로 쏘아 올리는 방식이었다. ‘역번지’라 , 거참 이름 한번 솔직하고 담백하네. 역번지를 지나 슬슬 걸어오던 Justin이 주차장에서 나오는 차가 지나가길 기다리며 20미터쯤 앞에 있는 사거리를 바라 보았다. 자신이 있는 쪽 모퉁이에는 National Bank가 있었고, 건너편에는 StarBucks, 그 건너편에는 WhitCoulls 서점, 그리고 자신이 있는 길 건너편의 모퉁이에는 BNZ Bank가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동양 커플이 그 모퉁이를 뛰어서 돌았다.

BNZ Bank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서 성빈은 그 알마니 검은 정장 사내 일행이 30미터 뒤까지 따따 온 것을 봤다. 제길. 혜원을 데리고 뛰는게 한계가 있다. 하지만 달리 다른 방법은 없었다. 무작정 뛰자. 커플은 Queen St을 벗어나 이제 Victoria St.으로 접어들어 뛰고 있었다. 조그만 사거리에서 대각선으로 한번만 건너면 SkyTower가 있었다. 저 속으로 숨으리라.

Justin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길 건너에서 자신이 있는 방향으로 뛰고 있는 저 커플을 바라보고 있었다. 길 건너편에서 자신과 점점 가까워지며 뛰고 있던 커플은 차량이 뜸한 틈을 타, 아예 Victoria St.을 무단횡단해서 이제는 자신과 같은 길 위에 있었다. 그 커플은 죽기살기로 뛰어 오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던 Justin의 표정이 더욱 황당해졌다. 그 피 냄새를 풍기는 남자를 발견한 것이다.  Vincent 역시 3명의 검은 정장들을 데리고 죽으라 뛰어서 조금 전 그 커플이 지나친 BNZ Bank 모퉁이를 돌았다. 그 커플은 차량이 뜸한 틈을 타 자신쪽으로 길을 건너 왔지만, 그 검은 사내들은 여전히 건너편에서 뛰어 올라오고 있었다.
 
Justin은 뒷걸음을 쳤다. 왜 그랬는지는 본인도 모른다. 신속하게 뒷걸음을 쳐 Victoria St.과 Albert St.의 교차로 횡단보도에 섰다. 여길 건너면 이제 Sky Tower다. 저 커플의 방향으로 볼 때, 저리로 도망치고 있었다.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몇 초만 있으면 그 커플이 자신을 지나쳐 횡당 보도를 건너 Sky Tower 쪽으로 갈 것이고, 자신은 저 검은색 정장들을 세울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플이 횡단 보도에 도착하고 몇 초가 흐르자 신호가 바뀌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걸로 봐서는 꽤 멀리부터 뛰어온 듯 하다. 보행자에게 길을 건너라는 파란 신호등이 켜지고 성빈이 왼발을 내딛는 순간, 성빈과 Justin의 눈빛이 마주쳤다. 성빈은 웬지 모를 안정감을 느꼈고, Justin은 웬지모를 운명을 느꼈다. 그 0.1초의 순간 Justin은 성빈에게 어서 가라고, 여긴 내가 막아주겠다는 굳은 의지를 눈빛에 담아 성빈에게 보냈다. 성빈이 이해를 했는지 안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성빈이 길을 건너기 시작할 무렵 길 건너편에 도착한 Vincent는 지나가는 차를 모두 세우는 한이 있더라도 사거리를 가로질러 성빈을 잡을 생각이었다. 성빈은 Albert St. 만을 건너고 있었지만, 건너편에 있는 자신은 대각선으로 가로질러야 할 형편이었다. Justin의 눈에 성빈 옆에 있던 외국인 남자가 눈에 들어온 것은 그 때였다. 그 남자는 길 건너에서 왼 팔을 쭉 앞으로 내밀고 손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멈추라는 싸인이었다. 그의 오른손은 허리 뒷춤으로 찔러 넣어져 있었다.


쌩판 본 적도 없는 남자가 자신에게 길을 건너지 말라고 무언의 싸인을 보낸다. 차도 건너편에 있지만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동작은 절도있고, 흔들림이나 주저함은 없다. 그는… 훈련을 받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허리 뒷춤에 찔러진 오른손은 총을 잡고 있을 것이다. 그 남자의 멈추라는 싸인을 보는 순간 Vincent 자신도 오른손을 양복 안 주머니에 반사적으로 넣기는 했다. 총집에 있는 H&K USP 45구경이 손에 잡히자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러나 갈등이 된다. 분명 저 남자는 나를 뚫어지게 보고 있다. 옆에는 3명의 팀원들이 상황 파악도 못하고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총이 없다. 뉴질랜드에서 한번에 4명이나 총을 들고 설쳤다가는 모든게 엉망이 될 터였다. 그리고 애송이 동양 남자애를 하나 잡는데 권총이 4자루나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뭔가. 저 남자가 길을 건너지 말라고 한다. 건너려고 하면 저 놈은 분명 뒷 춤에서 총을 꺼내 공중으로 두 발 연사를 할 것이고, 이 복잡한 길은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혹은 저 놈이 경고도 없이 바로 나에게 쏠 수도 있다. What the Fuck! 도대체 이거 무슨 해괴 망칙한 일인가. 대체 저 놈은 누구란 말이야.

둘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동안, 성빈과 혜원은 Sky Tower 바로 앞의 버스 정류장까지 이내 달렸다. 거리는 30m나 될까 말까 했지만, 성빈에게는 군대에서 하던 행군만큼 길게 느껴졌다. 달리면서도 성빈은 뒤를 힐끔 힐끔 돌아봤다. 눈빛이 마주쳤던 그 사내는 오른손은 허리 뒷춤에 찔러 넣은채 알마니 검은 정장에게 손을 내밀어 정지하라고 하고 있었다. 알마니 검은 정장도 양복 안 쪽으로 한 손을 찔러 넣은채,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조용하고 안전한 나라로 알려질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한 복판에서 이게 뭔 일이람. 일단 도망가자. 생각은 나중이다.

정류장에는 막 떠나려는 버스가 있었다. 성빈과 혜원은 어디로 가는 버스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올라탔다. 이내 버스는 출발하여 Hobson St. 방향으로 꺾었다. 근데 나를 도와준 저 남자… 어디서 봤는데… 어디서 봤더라.


신호등이 다시 한번 켜 질때까지 Justin은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계속해서 차는 지나가고, 다음 신호를 기다리는 보행자로 횡당보도는 다시 북적거려지기 시작했다. Justin은 이제 왼 손을 내렸지만, 여전히 오른손은 뒷춤에 찔러 넣고 있었다. 약 3분간 그렇게 Justin과 Vincent는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보행자의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뀌자 Justin은 그대로 천천히 뒷걸음으로 횡당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자신도 30m 올라가면 Sky City Hotel에 닿을 것이고, 일단 방으로 돌아가 수십통의 전화를 해댈 생각이었다.

Justin이 멀어지기 시작하자, Vincent는 일단 힐튼 호텔의 숙소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 애송이 놈이야 모바일의 GPS로 다시 찾으면 그만이었다. 힐튼 호텔에서 Viaduct까지 뛰어가느라 검은색 Territory도 그대로 호텔에 있었다. 일단은 호텔로 돌아가 전열을 가다듬어야했다. 그리고 나를 방해한 저 놈을 어떻게 할 지도 고민을 해야겠다. God Damn! Vincent는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 쳐다볼 정도로 큰 소리로 욕지거리를 해대고는 Albert St.을 따라 힐튼 호텔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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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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