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오클랜드 국제공항  - 11월 23일 일. 11:47am

성빈은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금요일 밤차를 타고 태국에서 말레이시아까지 왔고, KL에서 가장 복잡한 Puduraya 버스터미널 한 복판에서 웬 미친놈한테 강도를 당할 뻔 했다. 오른쪽 어깨가 아직도 쑤시는 듯 했다. 토요일 낮에 KL Central 역에서 점심을 패스트푸드로 떼우고 책이 100권이나 될까 말까한 간이 서점에서 편치 않은 영어로 된 책을 뒤지다 KLIA Express 고속 열차를 타고 KL 국제공항으로 가 다시 밤 비행기를 타고 뉴질랜드 오클랜드 국제공항에 두시간 전에 도착한 것이다.


오클랜드 국제공항은 항상 오전 10시에서 2시가 가장 복잡했다. 입국 수속을 하기 위한 사람이 많아 1시간 30분이나 걸렸다. 시드니에서 출발한 승객 400여명을 태운 보잉 747은 9시에 도착했어야 했으나 연착으로 10시에 성빈의 말레이시아 항공과 같이 도착했다. 제길. 그 외에도 연착된 비행기가 한 대 더 있고, 예정 시간보다 50분이나 일찍 도착한 비행기까지 모두 10시에 오클랜드 공항에서 만난 것이다. 연착은 그렇다쳐도, 50분이나 일찍 도착하는건 대체 뭐야. 기장이 과속이라도 한거야 라고 성빈은 투덜거리며 입국수속을 기다렸다. 성빈은 노트북과 여벌 옷 한벌이 든 백 하나가 전부였다. 어차피 대부분의 짐은 오클랜드 시내 혜원이의 아파트에 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수속이 조금 빨리 끝나기는 했지만, 어쨌든 1시간 30분이나 걸려서 나왔다.

오클랜드 공항은 성빈이 지금까지 본 공항 중 가장 작은 공항이었다. 요만한 사이즈의 공항이 국제공항이라는 것에 항상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인천 국제공항이나 일본 오사카의 앞바다에 떠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간사이 공항을 오간 성빈에게 오클랜드 공항은 유치원처럼 보였다. 그런 오클랜드 공항이지만, 바쁜 시간에는 나름 복잡하기에 성빈은 오클랜드 공항에서 누굴 만나기 위한 장소로 언제나 맥도날드를 이용했다. 모든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를 빠져 나오면 바로 좌측에 테이블이 8개쯤 있는 맥도날드가 있다. 맥도날드를 둘러보지만 역시 자리는 없다. 그리고 성빈을 마중나오기로 되어 있는 혜원도 없다.

커피를 하나 사서 다시 둘러보다 혼자 앉아있는 점잖은 외국인을 발견하고는 그에게 가서 합석을 해도 되는지 물어본다. 그 남자는 성빈을 쓱 쳐다보더니 그러라고 한다. 성빈은 그 남자에게는 등을 돌리고 앉아 입국수속을 마치고 오른쪽의 게이트(오클랜드 공항의 작은 사이즈로 인해 입국하는 사람이 나오는 게이트는 달랑 한개다)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간간이 좌측의 건물 밖으로 통하는 유리문을 주시한다. 혜원이 나타날 곳은 저 유리문이기 때문이지만, 우측의 사람들을 구경하는게 더 재미있기는 하다.



등에 맺 가방도 풀지 않은채 엉거주춤 앉아 혜원을 기다리던 성빈은 싱가포르에서 산 신형 모바일이 생각났다. 이제 GSM을 사용하는 뉴질랜드에 왔으니 켜 보자라는 생각으로 백에서 모바일을 꺼내 전원 버튼을 3초 누르고 있었다. 삐리릭 소리와 함께 모바일이 켜지기 시작했고, SAMSUNG이라는 로고가 뜨는 동안 성빈의 눈에 유리문으로 다가오는 혜원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벌떡 일어나자 모바일이 바닥에 떨어졌고 그 충격으로 배터리가 본체에서 튕겨져 나왔다.

모바일을 줍기 위해 몸을 숙이는 순간 성빈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최대한 움츠리고 바닥으로 바라봤다. 저 우측의 게이트에서 반질반질한 검은 양복을 입은 그 남자가 나오는게 아닌가? 그 좋은 체구와 눈이 부실듯한 짧은 금발. 죄를 진 것도 아닌데, 성빈은 본능적으로 몸을 최대한 낮춰 눈에 띄지 않으려고 했다. 혜원은 이미 유리문을 통과해 맥도날드로 걸어오고 있었다. 게이트에서 나온 남자가 혜원과 5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유리문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혜원은 그 남자가 스쳐 지나갈 쯤, 성빈을 발견하고는 걸음이 빨라졌다. 성빈의 머리가 미친듯이 돌아갔다.

저 놈은 인파가 수백명 되는 한복판에서도 나를 공격한 놈이다. 분명 미친놈이거나 나를 다른 사람과 착각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여권 도장을 다시 받으라고 자길 도와준 나를 아침 6시에 말레이시아에 도착하자마자 공격했을까. 어쨌든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알마니 검은 정장은 유리문 앞에서 예닐곱명의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과 합류를 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빠!” 고개를 들어보니 혜원이 웃으면 달려와서는 안긴다. 혜원을 안고는 눈으로 계속 그 남자를 주시한다. “보고 싶었어. 오래 기다렸어?” 라고 혜원이 얘기한 듯 하지만 성빈의 귀에는 잘 안 들어온다.

모든 신경은 알마니 정장에게 가 있다. 그리고 검은 정장을 입은 그 외의 여러명도 신경쓰인다. 그들은 유리문 바로 앞에서 뭔가 열심히 대화중이다. 서류도 주고 받고 있다. 눈에 안띄게 여길 벗어날 방법이 뭐가 있을까. 그 때였다. 알마니 검은 정장이 일행에게서 떨어져 우측으로 10미터쯤 걸어가더니 화장실로 들어가는게 아닌가? 찬스였다. 성빈은 혜원의 손을 꽉 잡고 빠른 걸음으로 유리문으로 향했다. 유리문 옆에서는 알마니 검은 정장과 합류했던 7명의 사내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옆을 스쳐 지나 건물 밖으로 나가자 혜원의 손을 이끄는 성빈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진다. 건물 밖으로 나온 성빈은 건물 바로 앞의 주차금지구역에 주차되어 있는 Ford사의 검은색 Territory 3대를 봤다. 그리고 더욱 빠른 걸음으로 혜원의 차에 올라타 출발을 했다. 



Justin은 30분 전에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와 맥도날드에서 커피를 마시며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도 금요일 밤에 사무실에서 밤을 세는 중 그 놈의 Peter에 대한 보고를 받았기 때문에 자신이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못한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Justin은 케이트에게 토요일 비행기를 알아 보라고 한 뒤 아침 6시에 사무실을 나와 집으로 갔다. 잠시 눈을 좀 붙인 후 , 또 노트북으로 정세 보고를 받고는 다시 잠시 고민을 했다. 정말 뉴질랜드로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어차피 케이트한테 비행기 잡으라고 한거 가자. 가서 별 볼일 없는 정보라면 그대로 지난 2년간 한번도 써 본적 없는 휴가를 신청해 버리리라.

그리고는 일주일 정도 조용한 뉴질랜드에서 푹 쉬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온 것이다. 그렇지만 막상 와 보니, 막막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자신이 여기 온 결정 자체가 미쳤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웬 동양 남자가 앞의 자리에 합석을 해도 되냐고 물은 건 그 때였다. “Of course” 그 남자는 누굴 기다리는지 연신 게이트쪽이나 바깥으로 통하는 문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역시 난 미친거야. 맘 편하게 휴가나 신청하자라는 결론이 내려지는 그 순간이었다. 이 동양 남자가 갑자기 자세를 낮추며 경계를 하는 것이었다.

Justin은 동양 남자가 바라보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열명 정도의 사람들이 게이트에서 나오고 있었지만, 14년을 정보 계통에 근무한 Justin은 바로 알아 볼 수 있었다. 그 검은색 정장을 입은 사내를. 두 손은 팽팽한 긴장 상태에 있었고 눈은 계속 주위를 살피고 있으며, 걸음 걸이는 조심스러우면서도 보폭은 일정했다. 그건 특수 훈련을 받았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서는 진한, 방금 도살한 소에게서나 날 법한 진한 피 냄새가 나고 있었다. Justin은 이 동양 남자가 저 검은 정장의 남자를 경계함을 알아 차렸다.

그 사이 이쁜 동양 여자가 함박 웃음을 지으며 그를 끌어 앉았다. 머뭇거리던 동양 남자는 검은 정장이 화장실로 가자 여자 손을 이끌고 유리문 쪽으로 이동했다. Justin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동양 커플을 따라 나갔다. 커플을 따라가던 Justin은 맥도날드와 유리문 중간쯤에 있는 비행기 도착 안내판을 발견하고는 5초 정도 멈춰 안내판을 빠르게 훑었다.

그는 검은 바탕의 붉은색 글씨들 중에서 10시에 도착한 말레이시아 항공의 비행기를 확인하고 다시  빠른 걸음으로 유리문 밖으로 나간다. 벌써 동양 커플은 저만치 가고 있었다. Justin 역시 유리문을 나오며 바로 밖의 주차금지구역에 주차되어 있는 3대의 검은색 Territory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달려가다시피 한 Justin은 막 떠나는 동양 커플의 차 번호판을 간신히 외웠다. 그리고 모바일을 꺼내 런던의 자기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오클랜드 공항에 10시에 도착한 KL 출발 – 오클랜드 도착 말레이시아 항공의 승객 리스트 중 동양인 명단을 확보하고, 뉴질랜드 차량 BPZ722의 차주를 조회해봐”





신고

'개인적인 글 > [거래] 첩보스릴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래] 06-02. 추격  (2) 2008.11.10
[거래] 06-01. Auckland  (1) 2008.11.10
[거래] 05. 재회  (1) 2008.11.10
[거래] 04. 포착  (1) 2008.11.10
자작 소설 [거래] 에 대해 .  (1) 2008.11.10
[거래] 03. 3자 회담  (3) 2008.11.09
Posted by 비회원
TAG